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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ger warning : 약유혈 묘사, 세뇌
Queen × 백기
적우
“여긴, 어디지…”
어둡고 답답한 공간 어딘가에 묶여 있어 풀어 보려 했으나, Evol도 통하지 않아 당황한 그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익숙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안녕?”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 인사해 오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며칠 전 실종 신고를 했던 그녀의 모습이었으나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그는 그녀를 응시하며 그녀가 맞는지 판단을 해보았지만, 제대로 서지 않았다. 그 때의 그 상태에서 그는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불러 보았다.
“연아…?”
의심하듯 의문형으로 끝낸 백기에게 아무 말 없이 더 다가오는 그녀를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자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피가 베여 나왔으나 그녀는 여전히 느릿한 속도로 백기에게 다가왔었다. 시간이 느리게만 가는 것처럼.
“경계하지 마. 네게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니니까.”
계속 경계를 하는 백기에게 안정을 주려는 듯 달콤하게 말했지만, 그가 알고 있는 유연이 아니었기에 그 경계는 풀 수 없었다. 그녀는 웃으며 백기에게 다가왔다. 그의 턱을 들게 해 알싸한 게 아파오는 그 터진 입술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피가 묻은 손가락을 그대로 둔 후에 그의 주변을 빙빙 느긋하게 돌았다. 백기는 지금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들어 그녀를 계속 도는 대로 바라보았으나, 그의 행동을 제지도 하지 않아 금방 지쳐 버렸다.
“백기.”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멈추고 그녀가 백기의 뒤로 향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드디어 들렸다. 똑같은 목소리로 다르게 자신을 부르는 그것이 위화감이 느껴졌다. 몽롱하면서도 어디엔가 빠져들 것 같은 그런. 그녀는 뒤에서 그의 어깨를 잡은 후, 그의 눈을 가렸다.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공간은 어둡고 울리는 목소리였다. 백기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백기, 눈을 떠. 봐, 네 눈앞에 누가 있지?”
그녀의 물음에 백기는 무언가를 찾듯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분명 눈앞이 깜깜 할 텐데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무언가 보이는 것처럼. 백기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연아…!”
자신 있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백기를 따라 그녀, Queen은 다시금 속삭였다. 선배, 나는,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뿐이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난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할 테니까. 유연의 목소리와 말투를 그대로 옮겨 내며 속삭였다. 백기의 발작이 시작 되었다. 다리가 떨려온다. 백기가 보는 자신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수많은 관중들이 그녀를 비난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죽어! 너 때문에! 백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웃음이 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이것이 최선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관중들은 그녀가 처형대에 오르자 환호를 한다. 지금 그곳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자신 한 명뿐이었다. 안 돼… 손을 뻗어 보아도 닿지 않았다. 이 현대에서 볼 수 없는 처형대가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해쳐나가며 유연에게 가려 했으나, 닿지 않고 그대로. 철컹.
“아악…!”
끔찍하다 눈앞에서 죽는 그녀의 모습이 순결한 죽음도 아니었다. 죽음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단 한 명도 그녀를 위해 울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면서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녀로 인한 재해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 것으로 열광한다. 툭- 하고 영상이 끊겼다. 까맣게 변한 그곳에는 환호성도 사람도 유연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기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녀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오해를 풀 수는 없었을까. 그녀를 막을 수 없었을까. 자책감으로 물든 백기의 앞에 그녀와 닮은 Queen이 섰다.
“가여운 백기. 고개를 들렴. 왜 그렇게 죄책감을 가지는 거야. 증오를 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 모르겠니?”
퀸은 짝하고 박수를 치며 그를 원래 세계로 돌아오게 했다. 멍했던 눈이 다시 생기다 돋다가 다시 멍해졌다.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알려주는 눈동자에 Queen은 웃으며 그를 쓰다듬어주었다. 가여운 것 가여운 것. 백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네가 알던 그녀는 실종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된 선동으로 죽여 버렸어. 그 많은 관중들이 그녀만 보면 죽어라죽어라 외치는데, 정상적이 사고가 가능했을까? 이제, 네가 증오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말해 봐.”
“연이가, 잘못한건 없어… 그렇다면, 나와, 사람들이겠지…”
“과연, 그 사람들 중 그녀가 죽지 않길 바랐던 사람은 몇 명이었을까?”
백기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앞으로 나서려는 사람은 오히려 그녀의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려는 사람들뿐이었다. 백기의 눈에서 눈물이 일었다. 그녀가 잘못한 게 무엇이기에 그렇게나 그녀를 죽이려는 것일까. Queen은 그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며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어 주었다.
“널 제외한 인간들은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바랐어. 이런 인간들을 이 세계에 살아가야 할 가치를 주어야 할까? 미래에 필요한 걸까?”
선배, 난 모든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원해요. 똑같은 목소리, 다른 사상이 점점 백기의 생각을 흔들리게 했다. 책임 회피가 더 나을지도 몰라. 점점 Queen의 의견에 찬성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것을 놓칠 리가 없는 Queen은 다시 그에게 속삭인다.
“그녀가 단 한 명도 자신을 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죽었을까? 동정심 따위도 없는 그 추악한 인간들을 위해?”
백기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주었다. 백기가 본 그것을. 다시 한 번 더. 토악질이 밀려온다. 방금 전의 백기는 유연을 구하고 싶다는 욕심이었으나, 지금은 사람들의 증오로 이루어져 버려 그들을 유연의 곁에서 떠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차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그 아무도, 살릴 가치가 존재 하지 않았다.
“백기, 네가 해야 할 일을 이제 알겠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인간들에게 벌을 주는 거야. 그녀가 그리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들에게.”
* * *
시내, 중앙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가득한 그곳에 후드를 뒤집어 쓴 백기가 중앙에 섰다. 갑자기 선 그를 지나친 사람은 어두침침해 보이는 백기를 인상을 쓰며 바라봤으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다시 자신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백기는 고개를 들어 올려 숨을 한 번 들어 쉬었다 다시 내쉬었다. 멍한 눈동자가 침착함으로 변하자 갑작스럽게 바람 한 점 없던 날이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Queen의 능력인가. 원래 있었던 Evol 보다 더 강한 능력이 새어나오자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네 손에 피를 묻히긴 싫겠지.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네 대신 피를 묻힐게. 사람이 점점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또 날카로운 바람은 살갗을 찢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허둥지둥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쳐봤자 소용도 없을 텐데. 바람은, 창문을 깨버린다. 간판을 부쉈다. 웬만한 태풍보다 더 거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구름마저 움직였다. 쨍쨍하게 내리 쬐는 해는 구름에 의해 가려졌다. 밝고 활기찼던 시내의 거리는 그렇게, 처참이 짓밟혀 사람의 시체가 늘어진다.
다시 조용해지고, 점점 구름이 걷혀질 때, Queen이 그를 향해 걸어 왔다. 시체들은 대부분 한 번에 목숨이 끊긴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 시체들을 밟으며 오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괴기스러웠다. 백기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분명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음에도 그의 기억 속에서 죽어버린 유연이 바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구나. 하지만, 망설임 없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 아, 혹시 특파팀에서 했던 일이라 상관없던 건가?”
웃음을 흘리는 Queen에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자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 잘했어. 마치, 주인이 개를 훈련시키듯.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자비롭고도 잔인한 사람. 바람의 원인은 특파팀과 Black Swan의 조직원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인간이 없으니, 특파팀은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일반인들은 그저 자연재해 현상이라고 세뇌하고 있었다. 언젠간 이 재해가 끝나길 기도하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Evoler들은 Evol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그들이 해결할 방법이 없어 조용히 숨죽이고 숨어있었다. 그러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백기는 이제 Black Swan에서 Queen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인간이라 칭하며 12신 중 Hercules의 이름을 받았다. 조직 내에서 백기를 우러러 보는 사람도 있었고,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낙하산이라며 백기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백기는 그곳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Queen만 바라보았으며, 그녀의 말만 들었다.
어느 날, Queen은 백기를 불러 또 다른 임무를 주었다. 다른 곳의 인간 청소. 백기는 알았다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나가려 했으나, Queen이 그를 다시 잡았다.
“백기, 난 널 믿어 그들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걸.”
“… 다녀올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게 누구더라도 죽여야 해. 알고 있지? Hercules. 넌 잘 하리라 믿어. 우리의 영웅.”
다시 한 번 강하게 넌 우리의 조직이라는 것을 새겨주면서 그를 보냈다.
* * *
똑같은 반복, 구름이 하늘에 꽉 채우고, 바람으로 인한 살인이 시작되었다. 밟혀 죽어 가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 공기 막에 막혀서 막을 두드리는 사람. 혼란 한 가운데, 백기는 타인의 피를 흩뿌리며 시체를 쌓아 갔다. 피비린내가 가득한 이곳, 숨어 있는 인간이 없는지 찾아서 전부 피로 물들였다. 새하얀 복장은 피가 묻으면 티가 나는 것이 싫다는 Queen의 말에 검은 제복으로 바꿔 입은 백기의 모습은 마치 사신 같아보였다.
시체의 산 위에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쯤, 백기는 그 대와 똑같은 풍경에 하하, 웃고 말았다. 인간의 삶의 욕심은 결국 다 똑같은 걸까. 약자는 밟히고 강자는 짓밟고. 헛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부스럭- 갑자기 들려오는 인기척에 백기는 긴장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특파팀인가? 날 찾으러 왔나?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경계하던 백기는 익숙한 아이의 모습에 힘이 탁 풀렸다.
“형…?”
익숙한 목소리에 백기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유연과 같이 구했던 그 아이, 정호. 넋이 나간 백기에게 다가오는 정호. 아이의 모습은 그가 죽여 버린 시체들의 피로 물들인 채 다가왔다. 아니, 아이의 피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형, 맞죠?”
답을 바라는 아이에게 답을 주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도망가라는 신호였는데 정호는 알지 못 한 듯 계속 그에게로 향했다. 제발 가, 가란 말이야. 널 못 본 척 해줄게. 백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호의 발이 그의 발 앞에서 멈추었다. 정호의 손이 백기의 손에 닿으려 하자, 백기는 손을 가슴께로 올렸다. 순수한 아이의 손에 피 묻은 제 손을 묻히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정호는 그를 부르려 했으나, 저 멀리서 특파팀이 뒤늦게 다가오는 것을 본 백기는 무슨 말을 하려던 정호의 입을 막고선 바람으로 멀리 보내 버렸다. 특파팀이 도착하자 보이는 건 시체더미들. 백기를 죽이려 드는 수많은 무리들 틈에서 백기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특파팀은 아직 날 무시하고 있는 건가.”
날 너무 얕보는데… 이를 악 문 백기는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Queen의 능력으로 인해, 수명을 깎는 대신 능력은 더 거대해졌다. 그들 무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금방 눈앞에서 쓰러지는 특파팀을 보며 다시 헛웃음을 지은 백기는 시체를 자근자근 밟고선 본부로 복귀했다.
복귀한 백기는 쉬고 싶어 자신의 휴식공간으로 향하려는데, 누군가가 그를 붙잡았다. 백기는 붙잡은 이의 손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Queen. 처리가 끝난 후, 보고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대충 말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왜, 살렸지?”
낮게 경고조의 목소리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설마 다 본 걸까. 동공이 흔들리다가 진정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경고조의 목소리와는 달리 웃고 있는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다가 그녀에게 의문을 가졌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기는 나가기 전, 그녀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게 누구더라도 죽여야 해. 이걸 예상 하고 있었던 건가. 백기는 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려다 그녀의 말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사과 하지 마. 네가 그녀와 같이 구했던 추억의 아이라서 구했다는 변명은 필요 없어. Hercules. 하지만, 이해해. 너의 안식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가버렸으니. 하지만, 그 아이도 결국에 그녀를 위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어. 결국 네가 구해주었다는 이유에서 죽을 거야.”
Queen은 백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개를 훈련시키듯 혼내는 와중에도 소중히 다루는. 그 행동만 없었더라면 백기는 어린아이가 무엇을 하겠냐고 의문을 가졌겠지만, 그는 점점 사람이라는 인격을 잃어 갔다. 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가엽고, 불쌍한 아이. 네가 그들을 구원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수밖에 없어… 그들은 Evoler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기 어려울 테니까.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리는 게 그들에겐 구원이야. 그 인간들을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게, 네 일이자 임무. 다시 한 번 더 새겨. 넌 그녀를 대신해 그들을 구원하는 거야. 죽음이라는 구원을.
* * *
완벽한 세뇌라는 건 백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사고회로조차 정지해버린 백기는 인정사정없이 사람들을 죽였다. 파괴병기, 그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기계가 되어 버린 백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의 손에 죽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여론은 이게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무능한 경찰을 욕했고, 그런 여론들과 달리 민간인들은 죽음의 두려움에 빠져있었다. 정치인들은 회의를 하기는커녕 그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를 찾아 먼저 도망가기 바빴다.
여전히 백기의 눈앞의 이들은 모두 죽어갔다. 거리에 아무도 나돌아 다니지 않은 한산한 거리는 무섭고 어두침침했다. 백기의 주변에 있는 바람은 폭풍과도 같아 특파팀은 숨을 죽이고 미행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우왕좌왕 하고 있는 특파팀에서 가장 여려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선다. 가는 팔이 보인다. 후드로 눌러쓴 머리는 백기의 Evol에 의해 금방 벗겨졌다.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인 유연이 서 있었다.
“유연씨!”
갑자기 나서는 유연의 행동에 고진은 그녀를 잡으려 했으나, 거세게 부는 바람은 그가 유연에게로 향가는 것을 방해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로 다가갔다. 거센 바람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어도 계속 걸어 나갔다.
“선배! 이제 그만, 그만해요!”
바람 속에 묻혀 백기의 귀까지 닫지 않았다. 무의식의 백기는 그녀를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사고회로는 그녀를 죽여야 할 사람으로 밖에 인식 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 그를 안았다. 바람이 순간 살랑대는 바람이 불었다가 착각이라는 마냥 다시 거세게 바람이 분다. 백기는 그녀를 떨어트렸다. 방금 전 진정 된 Evol 능력을 제어 할 수 없는 그것이 그녀의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된 백기는 그녀를 경계했다. 아프게 떨쳐진 유연은 아픈 침음을 흘리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초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그토록 잔인했던가. 매일 사랑스럽다는 호박색 눈동자로 바라보던 눈이 아니었다.
“선배 날 봐요! 지금 선배가 하는 일이 제대로 된 것 같아요?”
오열하듯 그를 불러대었다. 무의식의 그를 꺼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 이 사태를 그만 둘 수 있을 테니까. 시끄러운 소리에 백기는 그녀를 향해 바람을 불게 했다. 찬바람이 그녀의 여린 살을 긁어내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칼처럼 냉랭한 바람이 그녀의 몸을 향해 불었다.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어? 어떤 목소리가 백기에게 말을 걸자 바람은 다시 잔잔해 졌다. 백기는 들려온 소리가 어디인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시체더미와 유연 그녀뿐이었다. 바람이 멈춘 그 틈을 타 유연은 그를 꼭 안았다.
“선배, 이렇게 분노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죽었다고 분노를 이쪽으로 돌릴 필요 없어요.”
이렇게 애원하듯 설득을 하지만, 백기의 귀에는 닿지 못했다. 그녀의 눈물이 백기의 옷을 적셔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백기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까 그,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냐는 도돌이표 같은 말. 유연을 무시하고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찾았으나, 아무리 봐도 존재하지 않아 백기는 신경질적으로 다시 유연을 떨어트리고 외쳤다.
“난, 그러지 않아!”
그와 동시에 그에게 속삭이던 목소리는 멈추었고, 다시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백기의 분노는 유연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원인인 것만 같아서. 다시, 칼바람이 불어 유연을 괴롭힌다. 바람으로 얼어붙을 것 같은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소리를 쳐도 닿지 않았다. 그걸로, 다시 그녀는
“유연아!”
도심 속, 백기의 Evol로 인해 허허 벌판이 된 이곳은 시체더미가 가득한 곳이자, 백기가 그녀를 안고 하염없이 우는 곳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옷. 그리고 자잘한 상처들 또, 깊게 베여 지혈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 빛을 잃어가는 유연의 눈에 백기의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선배… 미안해요. 더 일찍 찾지 못해서…”
“무슨 소리야 연아, 말 하지 마. 말 하지 말고, 응? 우리 병원가자.”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낸 상처에 백기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아무 소용도 없는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하지만, 왜 이리 생생한 거지. 백기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다. 유연의 피와 섞여 흘러내렸다.
“선배, 드디어 눈을 떴네… 난, 괜찮아요……. 나는, 다, 시 살 수 있어요… 다시, 또 봐요.”
자신을 소모품 취급을 하는 유연을 다시 한 번 더 보냈다. 안 돼 안 돼. 울고 있는 백기의 귀에 그 목소리로 다시 속삭였다. 후회 하지 않을 거라며? 오열이 가득한 소리를 내지르며 후회스러운 눈물을 툭툭툭 흘렸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그녀를 꼭 안으면서 슬피도 울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접근한다는 것을 눈치 챘으나, 백기는 그 상태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채 오열만 한다.
“그렇게, 울고 후회 할 거면 그렇게 떠나면 안 됐어. 백 대장. 내가, 이 손으로 널 죽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철컥, 소름끼치는 총 장전소리가 들렸다. 백기는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유연을 안고 있었다.
“유연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이야기는 못하는데…”
고진은 그녀의 몸에 제 재킷을 덮어준 후, 백기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그를 노려본다. 반항할 생각이 없는 백기는 멍하니 고진을 올려보았다. 눈에 생기가 없다. 얼마나 많은 수명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나. 이전에 유연의 사진을 보며 웃던 그의 모습이 아닌,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전우가, 이렇게까지 되었다니. 고진은 이를 악 물었다.
“…미리 막지 못한 내 탓도 있으니 사과할게. 미안하다. 백기.”
탕- 차가운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 이상의 학살은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