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방치하는 사이 Ares의 연애 감정은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것을 절절하게 통감한 것은 어느 주말, 하루 종일 놀다가 기숙사에 돌아와 욕실에 씻으러 들어갔을 때였다.
욕실에는 Ares가 서 있었다. Ares는 Queen의 옆집으로 이사 간 뒤에도 가끔 본부에 일이 있으면 기숙사에 들어와 하룻밤 자고 갔기 때문에 Ares가 욕실에 있다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날만은 평소와 다르게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세면대 앞에 서서 멍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씻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발을 들어 Ares의 오금을 괜히 한 번 걷어차며 핀잔을 줬다.
“독립해서 나갔으면 네 집에나 있을 것이지 여긴 왜 또 기어들어왔냐? 비켜 이 새끼야.”
평소였으면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Ares가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칫솔에 치약을 짜고 이를 닦기 시작할 때까지도 한마디 대꾸도 없이 거울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Ares의 얼굴에는 같잖은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아, 뭐야. 또 시작인가.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이를 닦았다.
Ares가 한 말이 Queen을 가리켜 한 말이라는 것을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Ares가 무슨 첫사랑에 빠진 남중생처럼 뺨을 붉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전날 오랜만에 기숙사에 돌아온 Ares가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다음날은 Queen과 함께 향장나무가 있는 교외의 언덕으로 피크닉을 갈 예정이라고 신이 나서 떠들어댔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Ares는 우리에게 Queen에 대한 진심을 들켰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지 나나 Helios가 듣는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Queen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곤 했고, 그때마다 어릴 적 Ares에게 매몰차게 쫓겨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Helios는 떫은 얼굴로 Ares를 쳐다보곤 했다.
“어떻게 나를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거지?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건가? 도망갈 생각이 없는 건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사람이…….”
기껏 Queen만 볼 수 있도록 설정한 모멘트 계정이 있으면 저런 허세 가득한 감성 문구는 지 모멘트에나 올릴 것이지 왜 애꿎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저렇게 꿍얼거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세면대에 치약 거품을 뱉고 혀를 닦은 뒤 웩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정말이지 천박하기 짝이 없군.”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들자 Ares가 경멸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이 추잡스러운 새끼야.”
“남의 감성을 방해하는 것이 너의 즐거움인가? 한심하긴. 같은 인류라는 게 혐오스러울 정도야.”
“뭐래, Queen한테 미쳐서 정신 나간 새끼가.”
한마디 쏘아붙인 뒤 다시 고개를 숙이고 혓바닥을 닦고 있을 때, 나는 목덜미에 서늘한 냉기를 느꼈다.
고개를 들자 공중에는 얼음 기둥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Ares를 돌아보자 Ares는 살기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설마 했지만, 설마 정말로 Ares의 Evol로 만들어진 얼음 기둥은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뭐 하는 짓이야!”
날아오는 얼음 기둥을 피하면서 나는 Ares를 향해 칫솔을 던졌다. 동시에 가장 굵은 얼음 기둥을 잡아들어 Ares를 향해 휘둘렀다. 나는 Artemis다. 활의 명수라는 뜻이다. 내가 던진 칫솔은 Ares의 미간에 정확히 명중했고, 순간적으로 눈을 감은 Ares는 미처 방어막을 만들 겨를도 없이 내가 휘두른 얼음 기둥에 옆통수를 얻어맞아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을 욕조로 넘어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탔다.
그 동안의 역겨움, 메스꺼움, 배신감, Ares로 인해 느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 나는 팔을 휘둘렀고, 얼음 기둥을 잡은 나의 손은 Ares의 온몸을 향해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얻어터진 입술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그럼에도 Ares는 힘겹게 입을 열어 소리 질렀다.
“그, 사람을, 모욕한다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가만두지 않겠어 Artemis!”
“뭐 이 새끼야?”
“그 사람은, 미치지 않았어. 올곧고, 바른 정신의, 너와는 정반대의……!”
하도 비장하게 소리치길래 나는 잠깐 손을 멈추었다. 몇 초 뒤에야 나는 Ares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하! 어이가 없어서 크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새끼 진짜로 미쳤나 봐. 야! Queen이 미친 게 아니고, 너! 너! 너! 네가 미쳤다고,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Helios가 우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명령으로 우리를 떨어뜨려 놓을 때까지 쉬지 않고 Ares를 패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총명하고 이성적이던 Ares가 ‘Queen에게 미쳤다’와 ‘Queen이 미쳤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다니. 사랑에 눈이 멀어 간단한 문장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얼간이가 되다니. 이 새끼 이러다가 언젠가 크게 사고 한 번 치겠다는 강렬한 예감을 나는 느꼈고, 그리고 나의 이런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7.
Ares의 배신이 발각되었다.
원인은 Hades였다. 그렇게까지 Queen을 좋아한다는 티를 내고 다니니 그 멍청한 Hades조차 Ares의 업무 태만을 눈치 챈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Hades가 이것을 기회로 여겼다는 것이었다. 전부터 본인의 Return-to-zero인지 뭔지 하는 계획에 Ares를 끌어들이고 싶어했던 Hades는 이 일을 빌미로 Ares의 약점을 잡으려고 했고, 이를 위해 자신의 부하 직원들을 Ares에게 감시로 붙였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터졌다. 욕실에서 나에게 쥐어터진 이후로 병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Ares는 상처가 조금 회복되자마자 신이 나서 Queen을 만나러 달려 나갔고, Ares의 동향을 감시하던 Hades의 조직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Ares에게 따라붙었다. 중간에 Hades의 부하들과 Ares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참담한 결과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Ares는 Hades의 부하들을 모조리 처치한 뒤 Queen을 조직의 손으로부터 도망시켰다고 했다.
Black Swan의 간부가 같은 조직원을 공격한 것이다. 대형 사고였다. Ares는 Boss에게까지 불려가 왜 Queen을 도망시킨 건지, 조직을 배신하려는 건지 집요한 추궁을 당했다고 한다. 이전에 그랬듯이 Ares는 이번에도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이빨을 털어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모양이지만, 사건이 사건인 만큼 이번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결국에는 본인이 직접 오른쪽 눈을 찢어 Boss에게 충성을 증명해야만 했다.
Ares가 오른쪽 눈을 찢었든 왼쪽 눈을 찢었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그때 Ares에게 공간접기를 당한 조직원의 증언이 내 흥미를 끌었다. 그 조직원은 Ares와 Queen이 같이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조직원들의 등장으로 인해 Ares는 자신이 Black Swan의 간부라는 사실을 Queen에게 들키고 말았는데, Queen은 Ares보다는 그래도 좀 정신머리가 붙어 있었던 모양인지, 당신이 Black Swan의 간부라도 상관없다고 사랑 놀음을 하는 대신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겠다며 Ares에게 크게 화를 내고 돌아섰다고 했다.
요컨대, Ares는 Queen에게 차인 것이다.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안고 조용히 기숙사로 올라갔다. Ares는 자기 방에 있었다. 벽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서 있었기에, 나는 Ares가 울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소리 없이 곁에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Ares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우냐?”
“……뭐야.”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Ares가 대답했다. 세상에, 살다 살다 Ares의 우는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야, 푸흐……, 너 진짜 우냐? 울어?”
“나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추한 얼굴로 Ares가 소리쳤다. 그 얼굴이 너무 우스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Ares의 우는 얼굴을 일부러 찰칵 소리를 내며 찍었다.
“뭐 하는 짓이야, 이리 내놔!”
Ares가 덤벼들었지만, 나는 간단히 몸을 틀어 Ares의 주먹을 피하면서 한쪽 다리를 들어 Ares를 공격했다. 정강이에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두 눈이 멀쩡할 때도 나한테 일방적으로 털렸던 Ares가 하물며 한쪽 눈을 다친 상태로 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컥, 하고 신음을 내뱉은 Ares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 발에 걷어차인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Ares를 내려다보다가,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Queen은 대체 뭐 하는 여자일까?
일개 조직원도 아닌 간부인 Ares가 전담으로 붙어서 유혹하고 있을 정도로 Black Swan에 있어서 중요한 여자였지만, 정작 나는 그 여자를 사진으로밖에는 본 적이 없었다. 예쁜 여자였다. 예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Queen의 무엇이 그 예민하고 까탈스럽던 Ares를 이렇게까지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든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직접 만나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뭐?”
내 혼잣말을 들은 Ares의 눈이 번뜩였다.
“Queen 말이야. 대체 뭐 하는 여자인데 너를 이렇게 흔들리게 만든 걸까? 직접 만나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건 내가 절대로……!”
Ares가 다시 나에게 덤벼들었지만, 헛수고였다. 나는 Ares의 사각지대가 된 오른쪽 옆구리를 걷어차 다시 Ares를 무력화시켰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면서도, Ares는 고통스럽게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 사람에게는, 절대로……. 내가…….”
“네가 뭐. 뭐. 뭐, 이 새끼야.”
바닥을 기어서라도 끝끝내 나를 막으려는 Ares를 한 번 더 걷어차 준 뒤 나는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정문 밖으로 나간 나는 멀리 우뚝 서 있는 연모TV타워를 내다보았다.
장비번호 P029. Queen을 위한 함정은 그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부하들을 호출했다.
8.
연모TV타워에서 만난 Queen은 기대 이하였다.
연갈색의 머리카락, 동그란 눈동자, 쬐끄만 몸집. 사진으로 본 것보다 예쁜 여자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명색이 Queen인 만큼 Evolver인 내가 가까이 가면 뭔가 특별한 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대체 왜 Ares는 이 여자에게 반해서 지 손으로 지 눈을 찢는 희대의 생쇼를 하면서까지 이 여자를 살리려고 했던 걸까? 세기의 지성인인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사실은 얼굴만 보는 놈이었던 건가? 의문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그 직후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이 나타났다.
Helios였다.
Helios가 TV타워에 있었다.
아니, Helios가 TV타워에 있다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연예인 ‘주기락’의 팬들이 TV타워 앞에 모여 주기락의 은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Helios는 평소 팬들을 아꼈으니, 팬들을 말리기 위해 TV타워에 나타난 것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Helios는 TV타워 앞, 시위를 벌이는 팬들 앞에 서 있지 않았다.
“여긴 못 지나가. Artemis.”
Helios는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Queen을 쫓아 올라간 계단의 끝, 굳게 잠긴 옥상문 앞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나를 엄습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비켜.”
설마. 설마, 설마, 설마 Helios까지.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어 말했지만, Helios는 그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곧 실험장치가 중단될 거야. 그 사람의 손에 의해서. 난 이번만큼은 꼭 성공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어. 그러니까 못 지나가.”
“야.”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왜 Helios가 Ares의 모멘트 비밀 계정에 몰래 로그인해 Queen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왜 Ares가 Queen에게 푹 빠진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떫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다정하지 않았던 Ares가 생판 남에게는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구는 모습을 보고 서운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Helios도 Queen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Helios도 Queen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Ares가 좋아하는 여자를 Helios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 세상에! 맙소사!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못 지나간다고 했……, 악!”
나는 Helios를 크게 한 대 쳤다.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거리는 Helios를 옥상문에 몰아붙인 뒤, 나는 자세를 잡고 본격적으로 녀석의 등짝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막장 드라마 찍냐? 어? 한 여자를 사이에 둔 형제의 삼각관계 뭐 그런 거야? 미쳤냐? 어? 막장 드라마 찍냐고 이 새끼야!”
“악, 잠깐만, Artemis, 나 연예인……!”
“은퇴했잖아 씨발 새끼야!”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Helios를 무시하며 온몸을 후려패던 중, 나는 뚜둑, 하는 불길한 소리를 들었다.
나는 손을 멈췄다. 비틀거리던 Helios가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9.
나에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Helios, 아직 오른쪽 눈이 완전히 낫지 않은 Ares. 여자 하나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두 남자가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너네를 어쩌면 좋냐? 어?”
“…….”
“…….”
“너네 미쳤냐? 어? 무슨 악당 조직 간부라는 놈들이 연애를 하다가 이 사달을 내? 어? 내가 진짜 너네를 어쩌면 좋냐? 머리라도 빡빡 밀어야겠어?”
지은 죄가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Helios가 그 말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나 연예인이야!”
“……나도 준연예인…….”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사고를 치래? 어?”
윽박지르긴 했지만 사실 나라고 해서 그런 폭력적인, 그러니까 시각적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할 생각은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이 둘은 어릴 때 가족을 잃은 나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놈들이었다. 가족 같은 놈들이 이 이상 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털끝 하나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둘을 Queen에게서 떼어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 둘을 Queen에게서 떼어놓기 위해서는…….
병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본 Ares와 Helios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Hades?”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에…….”
“내가 불렀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Hades를 돌아보며 말했다.
“축하해, Hades. Ares가 네 Return-to-zero에 참가하겠대.”
“뭐라고? 잠깐만, 나는…….”
“뭐! 정말!”
Ares가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잔뜩 들뜬 Hades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들뜨기도 했을 것이다. 천재 과학자 Ares를 자기 계획에 끌어들이기 위해 Queen으로 Ares의 약점을 잡을 계획까지 세웠던 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손쉽게 Ares가 계획의 참모로 들어오다니, Hades는 아마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잠깐. 잠깐만, Artemis. 이런 얘기 나는 전혀…….”
반면 이 악몽 같은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Ares는 나에게 뭔가 항의를 하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묵살했다. 조용히 내 머리카락을 가리키면서 나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빡. 빡.’
허튼소리 하면 네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릴 거야. 26살의 천재 과학도는 역시나 이 한 음절만으로도 내 의중을 정확하게 읽어 냈고, 결국 흙을 씹는 표정으로 Hades에게 어깨동무를 당한 채 병실 밖으로 반쯤 질질 끌려 나갔다.
이렇게 Ares는 처리했다. Hades는 적임자다. 본인이 Evolver라는 사실에만 도취되어 정작 그 Evol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그래서 지 꿈에 지가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얼간이지만, 이번만큼은 그 멍청함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저 멍청이를 데리고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아마 Ares는 부단히도 머리를 써야 할 것이고, 그것은 Ares를, 적어도 당분간만이라도, Queen을 잊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Helios.”
나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를 꾸며내어 말했다.
“뭐……, 뭔데?”
Ares가 무력하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본 Helios가 잔뜩 경계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웃으면서 의자에 도로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고 미리 만들어 두었던 스타일링 사진을 Helios에게 보여주었다.
“다친 데 다 나으면, 나랑 같이 기분 전환할 겸 스타일 변신하러 가자. 머리도 은발로 탈색하고, 피어싱도 하고, 문신도 하고, 옷도 이런 스타일 시도해 보고. 어때?”
“……뭐?”
내 예상대로, 평소와 정반대 스타일의 옷을 본 Helios의 입에서 악, 하고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싫어! 이 옷은 하나도 안 귀엽잖아! 팬더도 없고! 색깔도 시꺼멓고! 나 허니칩 씨 앞에서는 귀여운 동갑내기 컨셉이란 말이야! 이 피어싱은 뭐야? 왜 체인에 옷핀을 걸어 놨어? 문신은 또 왜? 너바나? 니르바나? 이런 문신 하면 나 앞으로 민소매 무대 의상은 어떻게 입어? 아니, 근데, 잠깐만, 이 옷 왜 찢어져 있어? 응? 여기 배 부분 말이야, 왜 찢어져 있어? 이거 원래 찢어져 있는 거 아니지? 이 사람이 오래 입어서 찢어진 거지?”
“아니야, 원래 찢어져 있는 거야.”
“악! 싫어, 안 돼! 이런 걸 어떻게 입고 돌아다녀!”
“맞아, Helios. 이런 걸 입고 돌아다니지는 못하지.”
“……뭐?”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호들갑을 떨던 Helios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Helios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일부러 악당 조직의 사악한 간부처럼 웃어 보였다.
“이런 옷을 입고 Queen 앞에 나서지는 못할 거야. 그렇지?”
“……Artemis, 너…….”
Helios는 그제야 내 계획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이불 위에 놓인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난 너도, Ares도 다시는 Queen을 만나지 못하게 할 거야. Ares는 Hades에게 발이 묶여서 못 나오게 만들었고, 너는 이런 부끄러운 옷을 입혀서 Queen에게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할 거야. 정 Queen을 보고 싶다면, 뭐, 나 주기락이 아니라 Helios라고 속여서 앞에 나서든가. 그건 말리지 않아. 하지만 ‘주기락’으로서는 이제 다시는 Queen을 만나지 못할걸.”
“너…….”
“……나는 더 이상 너희가 Queen 때문에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아련한 척 하지 마, 이건 네가 때려서 그런 거잖아!”
Helios는 나에게 덤벼들려 했지만, 내가 손을 쓸 것까지도 없었다. 부러진 갈비뼈에서 올라온 통증이 Helios의 온몸을 덮쳤고, Helios는 침대를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몸을 웅크렸다. 고통 때문에 눈꼬리에 눈물이 고인 채로, 그러나 Helios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저 옷……, 내가 순순히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귀여운 털파카라도 찾아서 위에 걸칠 거야! 알았어?”
“파카를 입어도 피어싱은 그대로일 텐데?”
“악!”
곧 탈색될 금발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Helios를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내려다보았다.
Helios나 Ares가 느끼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어릴 적 방학이 끝나는 날마다, 혹은 미국행 비행기가 막 떠나간 공항에서 내가 느꼈던 슬픔과 비슷한 고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제법 큰 고통일 것이라고 상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비록 악당 조직의 간부지만 사디스트는 아니다. 남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었고, 하물며 친구이자 남매 같은 이 두 놈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다만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미래를 바꾸고 싶었을 따름이다. 지금이야 둘의 감정을 아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 갈빗대 하나로 끝났지만, 만약 내가 아니라 Hades였다면? 다른 간부들이었다면? 아니면……, Boss였다면? 아직은 웬 가면을 쓴 남자가 나타나 Helios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이 꼴로 되도록 구타한 뒤 사라졌다, 아마 그 놈이 조직 내부에 Helios와 Ares가 배신자라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 같다는 거짓말로 Boss를 속여 넘길 수 있지만, 만약 그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지경까지 간다면? Boss가 이 둘의 감정을 알게 된다면? 그때 Helios는 무슨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까, 그리고 Ares는, 내 전화를 받고 병실에 올 수 있기나 할까…….
끔찍한 상상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막아야만 했다. 막기 위해서는 지금 미리 손을 써 둬야 했다.
Ares는 본부에 틀어박혀 실현 불가능한 일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Helios는 Queen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할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둘은 이제 Queen을 만나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으로부터도 멀어지는 법이다. 나는 이대로 이 둘이 Queen을 완전히 잊어 줬으면 좋겠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바라고 또 바랐다. 지금이야 조금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것이 이 두 놈을 위한 길이다.
아무려면 내가 둘을 진짜로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겠는가? 나는 이 둘에게 누나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리고 그것은 누나로서의 나의 의무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