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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챕터 스포 주의 (+등장 자체는 17챕터 이전에 했지만, 본명은 18챕터 이후에 밝혀지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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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Swan 희화화 주의. 캐릭터 붕괴가 매우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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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등장하는 Black Swan 관련 설정에는 공식 설정이 아닌 제가 만든 동인용 설정이 섞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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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및 욕설 사용 주의
나에겐 누나로서의 의무가 있다
Artemis + Ares + Helios
ranny
1.
Ares를 막았어야 했다.
전치 한 달의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잠이 든 Helios를 내려다보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진작에 Ares를 막았어야 했다고. Ares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작에 눈치 챘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오늘의 이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모두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Helios가 잠결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흠씬 두들겨 맞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나는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눈을 질끈 감으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Ares를, 그리고 Helios까지도, 막아야만 해. 그래야만 이 이상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번호를 누르고 몇 차례 신호음이 울린 끝에 Ares가 전화를 받았다.
“나야. ……본부로 와. 지금 당장.”
2.
누구라도 Ares의 이변을 처음부터 눈치 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Ares와 함께 지냈던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반대로 Ares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놈은 도저히 연애를 할 수 있을 성미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밖에서는 착한 척 친절한 척 가식을 부리며 그럭저럭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나는 안다. 그나마 마음을 터놓는 나와 Helios와 함께 있을 때 그놈이 얼마나 예민하고 치졸해지는지. 펜이 없어서 자기 만년필 잠깐 썼다고 남을 도둑 보듯이 보는 그 옹졸하고 까탈스러운 놈이 누군가를 좋아해서 연애를 한다고? 자기 시간 쪼개서 데이트를 하고, 차에도 들이고 방에도 들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Artemis. 지금 딱히 하는 일 없으면 나 옷 고르는 것 좀 도와주지.”
그래서 Ares가 나에게 옷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거기에 연애감정이 섞여 있다고는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Queen을 회유하기 위한 임무 수행의 일환이라고만 생각했고, 그래서 멍청하게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그저 기뻐하면서 Ares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 무렵 나는 Ares의 패션 센스에 지쳐 있는 상태였다. Ares는, 적어도 Queen과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의복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추천하는 옷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입는 경향이 있었다. 신광백화점의 직원이 추천한 괴상한 프린팅 티셔츠라든가, B.S 엔터테인먼트 코디팀 소속 조직원이 조합한 형광색 티셔츠와 파란 조끼 같은 것 말이다. 어느 날 Ares는 형광연두색 양복에 육각형 모양의 안경을 낀 꼬락서니로 퇴근을, 출근도 아닌 퇴근을 하면서 내 앞을 지나갔고, 그날 나는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라는 놈의 미적 인지능력이 저따위여서야 인류에게 뇌과학의 발전은 있는 것인가에 대해 고찰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었다.
누가 나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Ares가 패션 추천을 부탁했을 때 그 끔찍한 옷들을 드디어 불태울 수 있다는 데 들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나를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패션 테러에서 간신히 살아난 생존자였다. 왜 직장에까지 형광색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Ares가 갑자기 패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지, Queen을 유혹한다는 임무 수행 외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쓸 여유 따위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눈치 챘어야 했다. 그때 미리 눈치 채고 Ares를 막았더라면 이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몇 달 뒤의 나는 Helios의 병상 앞에서 지독하게 후회하게 된다.
3.
Ares의 변심을 눈치 챌 기회는 그 후로도 한 번 더 있었다.
조직 본부 내부에는 조직원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었다. 일반 조직원들의 기숙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간부들의 경우는 거실 하나에 방 세 개가 딸린 집을 간부 세 명이 같이 쓰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아마 서로 감시하게 만들려고 여러 명이 한 집에 같이 살게 만든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사는 집은 그래도 어린 나이에 잡혀 와 인체실험을 당했던 간부들에 대한 배려 차원인지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해서 서로 친한 나, Ares, Helios 세 명이 함께 쓰게 해 주고 있었다.
Ares가 기숙사를 나가 Queen의 옆집으로 이사 간 뒤로는 우리 집에는 나와 Helios,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마저도 Helios는 잘나가는 연예인이시라 평소에는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기숙사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는 대부분 나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Helios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한 내가 기쁜 마음에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야, Helios! 스케줄 없으면 말을 해야지, 그럼 저녁 같이 먹었을 텐데!”
“뭐, 뭐야, 노크 좀 하고 들어와!”
야동을 보다 들킨 남중생처럼 Helios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인터넷 창을 바로 종료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화면에 Ares의 사진이 있었던 것을. 그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의 Ares였기 때문에, 나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Helios의 마우스를 뺏어들고 저항하는 Helios를 한쪽 발로 여유롭게 제압하며 인터넷 브라우저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페이지를 클릭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 위로 쓰러져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오열하고 있었다.
“크크큭…….”
“…….”
“아니, 잠깐, 야, 아니, 크흑…….”
“…….”
“야, 아, 크흐흑……. 야, Helios, 이거 Ares냐?”
물론 Ares였다. 이목구비는 틀림없는 Ares였지만,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바보처럼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남자는 내가 아는 Ares가 아니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화면 앞에서 꺽꺽대며 웃음을 토해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Helios에게 이 사진의 출처를 물을 수 있었다.
“아, 씨발, 야, 크흐흑……. 아니, 야, Helios, 이거 대체 뭐냐?”
“……Ares 모멘트 비밀 계정.”
Helios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브라우저에 표시된 페이지는 Ares의 모멘트 비밀 계정이었다. 계정 개설 날짜를 보면 Queen 회유를 위한 임무 수행에 들어간 직후에 이 모멘트 계정을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Queen과 단둘이 사용하기 위해서 개설한 비밀 계정이었는데, 우연히 이 계정의 존재를 알게 된 Helios는 비밀번호에 Queen의 생일을 입력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 계정에 진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이 이 화면이었다.
나는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Queen의 사진, 허세 가득한 감성 사진, 그리고 Queen이 찍어준 것으로 추정되는 Ares의 사진이 화면을 빠르게 지나갔다. 아니, 그것을 ‘Ares’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속의 Ares는 분명 Ares이긴 했지만 더 이상 내가 아는 Ares가 아니었다. Queen을 성공적으로 유혹해서 실적을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평소 쓰지 않던 얼굴 근육까지 써 가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 20년 가까이 함께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얼굴. 스크롤을 내릴수록 나는 점점 웃음을 터뜨리기보다는 뱃속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참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Queen의 댓글에 달린 Ares의 답글은 더 가관이었다.
“당신만큼 달진 않아요, 귀여운 건 당신 그 자체예요, 와서 냄새를 맡아 봐요……. 아 씨발, 존나 미쳤나 봐. 야, 이거 지 부하한테 쓰라고 시킨 거 아니겠지? 지가 직접 쓴 거겠지?”
“……몰라.”
“아 미친, 너 이거 봤냐? Queen이 야옹야옹 이러니까 이 새끼 지도 야옹 이랬어, 와! 지인짜 역겹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임무 수행의 일환이 아닌 Ares의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애교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게 진심일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Ares가 여자의 애교에 마주 애교를 부려준다? 임무 수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좋아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한 나는 그저, 이 답글을 쓸 때의 Ares는 흙 씹은 얼굴로 자판을 누르며 속으로 이런 임무를 맡긴 Boss를 욕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역겨움을 억누르기 위해 그런 상상이나 하면서 터져 나오려는 웃음만 참고 있었다.
“……다 봤으면 이제 나가.”
“잠깐만, 나 이거 사진만 찍고.”
Ares가 애교를 부린 모멘트의 사진을 찍어 둔다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르고 고른 댓글 몇 개를 핸드폰으로 찍어 저장한 뒤 방에서 나갔다.
방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Ares의 진심에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었다.
그때 Ares의 진심을 의심했더라면.
아니, Ares의 진심을 눈치 채지 못했더라도, Helios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폴더만이라도 발견했더라면. 그 안에 Ares의 모멘트에서 몰래 다운받은 Queen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이후의 참상은 막을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4.
처음으로 이변을 눈치 챈 것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의 일이다.
밤이었다. 나는 기숙사의 내 방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악당 조직의 간부답게 나는 정부에서 접속을 차단한 동영상 사이트에 VPN 우회를 통해 접속해 강아지가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한창 강아지의 얼굴이 클로즈업됐을 때 갑자기 메시지 팝업창이 올라와 귀여운 강아지의 얼굴을 가렸다.
“뭐야, 어떤 새끼야?”
영상을 일시정지하고 욕설을 내뱉으며 메시지 어플에 들어가자, 야밤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놀랍게도 Ares였다.
[잘 자요, 나의 작은 바보.]
“뭐야.”
이 새끼가 드디어 암살을 당해서 살인범이 이 새끼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낸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씨발 뭐야]
[꺼져]
“뭐 씨발?”
즉각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그대로 Ares에게 보낸 직후,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나의 작은 바보’. 이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호칭을 Ares가 맨정신으로 쓸 리는 없었다. Ares는 아마 임무 수행을 위해 Queen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도중 실수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Ares는 왜 나에게 욕을 했을까? Ares는 나에게 메시지를 잘 보내는 놈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매일같이 시비조의 메시지를 보내 싸움을 걸어도 욕은커녕 무반응으로 일관할 뿐이라서, 나는 이 새끼가 날 차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임무 수행 중에 생긴 실수였으니 더더욱 나를 무시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욕을 했다.
왜 이번에는 욕을 했을까?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지만 애교를 부리고 있었던 게 부끄러워서? 단지 그것 때문에?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단순히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기에는 그놈의 반응이 너무 격렬했다. 마치…….
‘……마치 짝사랑을 들킨 남자애처럼…….’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어 그 끔찍한 생각을 부정했다. 아니야, Ares가 연애를 한다고? 그럴 리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의 사진 앨범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Helios의 방에서 찍은 Ares의 모멘트 사진을 누른 나는 거기에 찍힌 Ares의 웃는 얼굴을 확대해서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정말 바보 같은 얼굴이었다. 내가 아는 한 Ares는, 적어도 Black Swan에 들어온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웃은 적이 없었다. 고아원의 아이들과 놀아줄 때도, TV에 나와 가식적인 미소를 지을 때도, 조직을 배신하느니 오른쪽 눈을 찢겠다고 Boss에게 아첨할 때조차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웃음은 진심이라고. Ares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Ares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Ares는 Queen에게 사랑에 빠진 것이다. 처음에는 단지 임무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심이 되어서, 어느샌가 Queen 앞에서만큼은 저런 얼굴로 웃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그럼 모멘트의 그 말들이 전부 진심이었다는 건가?’
작은 부엉이, 나의 수달 씨, 귀여운 딸기, 야옹야옹, 전부 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 아래로 헛구역질을 해도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씨발! 와 씨발 존나 역겨워!”
기숙사 관리실에서 조용히 해 달라며 인터폰이 울릴 때까지, 나는 벽을 쾅쾅 두들기고 침대를 발로 구르며 이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도무지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5.
내가 Ares의 연애에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와 Ares는 어릴 때부터 줄곧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다. 비슷한 시기에 조직에 들어와, 비슷한 시기에 인체실험으로 Evol을 얻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vol을 얻은 뒤 우리는 같이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Ares가 재수없게도 16살의 나이에 미국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7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비록 피는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남매, 혹은 사촌, 혹은 최소한 친구만큼은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Are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정말 치졸하고 까탈스럽게 굴었다.
Ares는 어릴 때부터 예민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영국에서 우리의 방은 2층에 나란히 맞붙어 있었다. 우리의 방을 나눈 벽은 아주 얇아서 서로의 방에서 나는 소리가 곧바로 귀에 꽂히곤 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생활소음이 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더구나 그때의 나는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했고, 그만큼 주의력이 낮았기 때문에 소음의 빈도도 강도도 지금보다 더 높았다. 하지만 Ares, 그 옹졸한 놈은 그걸 도무지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방에서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금방 신경질적으로 벽을 쳐 댔고, 오기가 생긴 내가 소리를 일부러 더 크게 내면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히 하라며 나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지가 공부 좀 잘한다고 나한테 유세를 부렸던 것이다. Ares는 그런 놈이었다.
나에게만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분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Helios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조직에 들어왔다. Helios가 Evol을 얻은 것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였고, 우리가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도 우리를 따라와서 한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했다. 우리가 영국에 간 이듬해에 프랑스에서 6살의 나이로 연예계 데뷔를 하긴 했지만, 우리의 방학 때는 꼭 스케줄을 조정해서 영국에 오든가, 아니면 우리가 프랑스에 가든가, 어쨌든 최소 한 달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무리 데뷔를 일찍 했다고는 해도 Helios는 어린아이였다. 말도 잘 안 통하는 프랑스에서 혼자 외롭게 타지생활을 하다가 우리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방학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달려와 같이 놀자며 매달리는 Helios의 엉덩이에는 반가움으로 마구 흔들리는 강아지의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Helios에게 Ares는 정말 잔인하게 굴었다.
「난 방학이어도 공부해야 돼. 시끄럽게 굴지 말고 나가.」
묵이 형, 묵이 형 하며 안겨오는 Helios를 살갑게 맞아주기는커녕 저런 싸가지 없는 소리나 지껄이면서 Helios를 방 밖으로 쫓아내고 쾅 문을 닫아 버렸던 것이다. 축 처진 얼굴로 Ares의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조용히 동요를 부르는 Helios가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그마저도 Ares 그 매정한 새끼는 그 동요를 부르는 것조차 시끄럽다고 몇 분에 한 번씩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랬던 놈이 말이다! Queen에게는 이딴 답글이나 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왜 어려울 때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죠? 나는 당신이 나에게 제발 민폐를 끼쳐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소름이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사람 새끼인가? 우리한테는 그렇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던 놈이 Queen에게는 이렇게 가식을 떨다니, Queen도 알고 있나? 이 새끼가 이런 새끼라는 걸? 당연히 모르겠지! 같이 살았던 나도 이 새끼의 이중성을 이제야 알아봤는데 Queen은 오죽하겠는가? 정말 황당하고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새끼의 가식은 이게 끝이 아니다. 그 새끼는 연필 한 자루에도 유난을 떨던 새끼였다. 내가 연필이 다 떨어져서 그 새끼한테 한 자루만 달라고 해도 쓸데없는 낙서나 하니까 빨리 닳은 게 아니냐면서 타박만 할 뿐이지 한 자루 주는 법이 없었다. 영국에서 같이 사는 7년 내내! 지 용돈으로 산 것도 아니면서! 연필 한 자루에도 그렇게 치사하게 굴던 새끼가 하물며 본인 방에 나나 Helios를 들이는 일이 있었겠는가? 본인 차를 한 번 태워 줬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Queen의 모멘트에는 그 새끼의 방에서 찍은 고양이 사진이라든가 차에서 찍은 셀카 같은 것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 찌질한 새끼가 Queen은 꼬셔 보겠다고 지 차에도 태워 주고 지 방에도 들여보내 줬던 것이다. 남매 같은 우리한테도 안 그랬던 새끼가! Queen에게는!
일일이 나열하자면 정말이지 끝이 없다. 우리한테는 외국 학회 갔다 오면서 초콜릿 한 조각 사 오는 법이 없던 새끼가 Queen에게는 생일이랍시고 무슨 운석 조각을 선물하고 앉아 있고, 우리 앞에서는 뭔 음식을 먹든 항상 흙 씹는 표정을 해서 보는 사람 밥맛까지 떨어지게 만들던 새끼가 Queen이 찍은 사진 속에서는 활짝 웃는 얼굴로 포크를 입에 물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역겨웠던 건 그 새끼가 Queen을 부르는 애칭이 ‘작은 바보’라는 것이었다. 작은 바보! 작은 바보라니! 16살에 대학에 진학할 만큼 총명하고 똑똑한 그 재수없는 천재가 분자생물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와 Helios를 얼마나 멸시했는지 아는가? 그랬던 새끼가 Queen에게는 ‘작은 바보’를 애칭으로 쓰고 있었다! 와! 이건 사람 새끼가 할 짓이 아니다. 짐승, 아니! 설령 짐승이라도 자기 무리한테는 저것보다는 살갑게 대할 것이다.
나는 Ares의 욕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Ares의 연애 감정을 처음 알았을 때의 내가 얼마나 역겨움과 배신감에 몸부림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왜 Ares가 임무 수행 중에 딴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Boss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지? 왜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을 미리 하지 못했지? 내가 조직을 배신할 마음을 품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당시의 나는 그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Ares의 연애를 방치하고 말았다. 멍청하게, 참으로 멍청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