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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이 헬리오스에게 이불을 가져다주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 기뻤다.

그리웠던 이가 자신을 찾아냈다.

어떤 용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와 일주일동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쁘다. 행복해. 이번에는 내 소원이 이루어 질 지도 몰라요. 헬리오스.”

 

헬리오스는 왜 자신의 일주일을 그녀에게 맡긴다는 말을 내 뱉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용건만 듣고 끝내면 되었을 텐데.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마음 한 구석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과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다음날부터 헬리오스는 유연의 안내에 따라 그녀가 그렇게 즐겁다는 듯이 말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했다.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그녀가 케이크 가게 ‘허니 스프레드’의 주인이었으며, 디저트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먹는 거 파는 건 맞지?”

“당연하죠! 내가 만든 디저트들 여기에서 엄청 유명하다고요?!”

“다른 의미로의 ‘유명’이 아니고?”

“나랑 싸우자는 건 아니죠? 일단 먹어보고 이야기해요! 여기 앉아있어요.”

 

유연은 헬리오스에게 맛있다는 말을 반드시 들으리라 굳게 마음먹으며 케이크를 가지러 갔다.

 

그때 가게의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언니! 나 왔어요!”

 

가게의 vip손님인 여자아이였다.

 

“어서 오렴!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줄래?”

 

유연은 케이크에 집중하며, 양해의 말을 꺼냈다.

 

“응! 알겠어요.”

 

여자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로 걸음을 옮기다 헬리오스와 눈이 마주쳤다.

 

“우와. 머리카락이 은색이다! 이거 오빠 진짜 머리카락이에요?”

 

헬리오스는 인상을 썼다.

 

“그래.”

“오빠는 여기에 살아요?”

“아니.”

“그럼 어디에 살..”

“케이크 먹으러 온 거 아니야?”

“맞아요! 여기 케이크는 맛있어요! 우주 최고에요!”

“여기 세뇌 교육도 하나?”

“정말이에요!”

“그래.”

“오빠 나 여기 앉아도 돼요?”

“안 돼.”

“왜요?”

“그래요, 왜 안돼요? 우리 vip 손님과 함께 케이크를 먹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라고요?”

 

유연은 케이크 접시를 헬리오스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

 

“우리 vip 손님도 같은 케이크 맞죠? 스페셜 애플시나몬 크림 케이크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여자아이는 헬리오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언니 케이크는 최고에요!”

“감사합니다. 자, 봤죠? 헬리오스도 얼른 먹어봐요.”

 

헬리오스는 못 미더운 시선으로 포크로 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입안에 넣었다.

 

“.......”

“어때요? 맛있죠?”

“먹을 만하네.”

“아니지. 맛있다고 해야죠.”

“어. 먹을 만 해.”

“진짜 너무해!”

 

유연은 씩씩거리며 진열장에 비어있는 케이크들을 채우러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빠. 나빠요. 진짜 맛있는데.”

“응. 알아.”
“그런데 왜 맛있다고 말 안 해줬어요?”

“그냥.”

“그냥이라고 하면 안돼요.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왜.”

“솔직하지 못해서 남아버린 후회들로 추억들을 마주보게 되는 순간들이 마음이 아프대요.”

“난 그럴 일 없어.”

“거짓말.”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럼, 오빠는 지금 왜 울어요?”

“뭐?”

 

헬리오스는 놀랐다.

처음에는 그녀의 케이크의 맛에 그리움이 느껴져서.

다음에는 그녀가 화가 아닌 화를 내며 뒤돌아가는 모습에 그리움이 느껴져서.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는 아이의 말에.

 

정말이었다.

헬리오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이해 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헬리오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눈물을 닦았다.

여자아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을게요.”

“뭘.”

“오빠가 울었다는 걸.”

“왜.”

“비밀이에요.”

“왜.”

“답은 오빠가 알고 있을 테니까요.”

“.......”

“오빠 여기 가게 이름이 뭔지 알아요?”

“허니 스프레드.”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알아야 하나?”

“저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특별히 알려줄게요.”

“필요 없어.”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달콤한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대요. 근데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니 케이크를 한 번도 먹어준 적이 없대요. 하지만 언니가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니까 분명 언젠가 언니의 케이크를 아주아주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대요. 반짝반짝 작은 별도 아주 멋지게 불러 줬었대요. 지금은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여전히 잘 부를 거래요. 그리고 나도 작은 별 잘 불러요. 피아노도 잘 치구요.”

“그러니까 그걸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왠지 이야기 해주고 싶었어요. 오빠라면 알아 줄 것 같아서요.”

“....뭐?”

“아, 이제 시간됐다. 나 이제 가 봐야 해요. 오빠 다음에 또 봐요!”

“다시 볼 일 없을 거야.”

 

헬리오스는 무표정으로 포크로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라고요. 이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아빠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분명 오빠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길을 꼭

찾아 줄 거예요.”

“뭐?”

 

여자아이는 이미 문을 열고 나가고 있었다.

 

묘하게 유연을 닮은 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덧 약속했던 일주일의 마지막 날만을 남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가게를 마감하고 유연과 헬리오스는 집으로 향했다.

 

“케이크 정말 맛있지 않았어요? 맛있었죠?”

“먹을 만 하다고 했잖아.”

“.......”

“맛있었어.”

 

유연은 놀라서 헬리오스를 쳐다봤다.

 

“정말요?”

“그래.”

 

유연은 즐거움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반짝반짝 작은 별’

 

헬리오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대답에 마음이 한층 더 복잡해져갔다.

역시 내일은 용건을 듣고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그녀의 콧노래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속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한 일주일의 마지막 날.

 

“오늘은 어디로 안내 할 거지?”

“바다요!”

“바다?”

“네! 여기 바다가 좀 특별하거든요.”

“그래.”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걷다보니 작은 해변 하나가 나왔다.

주위는 해변가를 둘러싼 나무들이 이어져 있어서 마치 호수 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햇빛의 그림자가 된 바다가 반짝이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할 건데?”

“피크닉이요!”

 

헬리오스는 가만히 유연을 바라보았다.

 

“잊은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요. 그런데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 돌아갈 때 피곤할 거니까. 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휴식의 의미로 일정을 정해 봤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같이 쉬어요.”

 

헬리오스는 유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늘로 여기 떠나는 거 맞죠?”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어울려줘요. 안 붙잡을 거니까요. 어차피 못 이길 거 알고 있었으니까.”

 

헬리오스는 다시 마음속에 잔물결이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이면 끝인데 왜 이렇게 불편하고 이상한건지.

용건만 끝나면 그것만 들으면 이제 더는 볼 일도 만날 이유도 없다.

그거면 된다고 다시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일주일 동안 이 곳에 나와 함께 지내면서 소감 어땠어요?”

“사람 사는 도시네.”

“그게 다에요? 체가 원했던 도시보다 인간적이고 즐겁고 신나지 않았어요?”

“나한테는 필요 없는 것들이야. 그리고 체가 원했던 도시는 인간적인 이라는 표현이 필요하지

않아.”

“왜요.”

“연구의 당사자가 이제야 이유를 묻는 거야? 체에서 존재하는 인류는...”

“그거 말고요.”

“그럼 뭐가.”

“왜 헬리오스한테는 필요 없는 것들이냐고 물은 거예요.”

“말 그대로 필요 없고 원하지 않으니까.”

“그럼 헬리오스는 뭘 위해 살아 있는 거예요?”

“간단해. 존재하니까 살아 있는 거야. 그리고 매순간 적당한 이유를 붙이고 목표를 달성할 뿐이야.”

“한 번도 즐겁다 거나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없는 거예요?”

“그런 적 없어.”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싶다고도 생각한 적 없어요?”

“없어.”

“원하는 것도 없었어요?”

“원한 적 없어.”

“그게 뭐야. 그게...뭐야. 단순한 거라도 좋아요. 맛있는 걸 내일도 먹고 싶으니까. 라든가.”

“나한테는 하찮은 이유네. 매순간 적당한 이유를 붙이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

“헬리오스가 붙이는 적당한 이유는 자신을 위한 이유가 아니잖아요.”

“늘 너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안 돼. 내 인생인데 왜 그렇게 네가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너나 행복하면 될 일이잖아.”

“그게 아니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유연은 일주일전 여전했던 헬리오스를 만나 기뻤다.

유연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준 헬리오스를 만나 기뻤다.

유연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맛있다고 말해준 헬리오스를 만나 기뻤다.

유연은 일주일의 마지막 날 여전했던 헬리오스를 만나 아프고 슬펐다.

 

“기억나요? 내가 블랙스완에 있었을 때, 실험체로 연구실에 가기 전에 헬리오스에게 부탁한 거.”

“기억나. ‘당신이 납득할 만 한 인생을 살아주세요.’ 라고 했었지.”

“지금의 인생은, 헬리오스의 인생은 납득할 만 한 인생인가요?”

 

헬리오스는 유연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납득할 만 한 인생.

어떤 명령이든 납득 이전에 받아들였고, 완수하였다.

그리고 그 때가 헬리오스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화를 내고 있다.

왜 화를 내지?

자신의 삶도 아닌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자신보다 훨씬 약하면서 무서우면서 계속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다치고 울었다.

그리고 헬리오스는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치고 포기하려 할 때 그대로 놔 둘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구한게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날 구했다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의문은 오늘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헬리오스는 입을 열었다.

 

“내가 찾아온 건 너에게 용건이 있어서야. 기억해?”

“알아요. 그리고 아직 내 질문에 대한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말 돌리지 말아요.”

“말 돌리는 거 아니야. 이 용건이 너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될 거니까.”

“뭔데요? 그 용건.”

“네가 날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소원이라는 게 뭐였는지 말해.”

“...네?”

“처음 만났을 때 넌 말했어. 너에겐 소원이 있다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고.

그리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 넌 말했어.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이니까. 지켜야한다고.

그리고 블랙스완에 들어왔을 때 넌 말했어. 꼭 그 소원을 위해서 해내 보이겠다고.

그리고 블랙스완에서 날 마지막으로 봤을 때 넌 말했어. 언젠가 더 이상 소원으로 남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그 소원이 뭔데?”

 

유연은 놀라웠다.

그 헬리오스가 이 질문을 하는 순간 까지 자신을 비웃었을 모습이 떠올라서.

그 헬리오스가 자신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음에.

유연은 기뻤다.

 

‘하지만 내 소원은 지금의 당신이 이루어 줄 수 없어요.’

 

유연은 헬리오스를 바라보았다.

헬리오스도 그런 유연을 바라보았다.

 

“내 소원이 그렇게 궁금해요? 별거 아닐 텐데도?”

“그래.”

“겨우 내 소원 때문에 날 찾아 온 시간들이 헬리오스는 납득이 갔었어요?”

“아니.”

“그럼 왜.”

“납득 해보려고. 납득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말해.”

“헬리오스 조금은 변했네요.”

“그래서. 대답은?”

“내 소원은 사랑하는 이의 웃음을 다시 보는 거예요.”

“그게 다야?”

“네.”

“겨우 그 하찮은 소원으로 지금까지의 일들을 겪어 온 거라고?”

“하찮지 않아요.”

“어째 서지?”

“나에겐 그게 전부였어요.

내 전부를 다 부딪쳐서 사랑했어요.

그 사람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내가 기억한 세계에서의 그는 너무나 빛나서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알고 나니 장난꾸러기에다가 먹는 것은 필수였고 노래도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했어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던 나만의 슈퍼스타였어요.

물론 그에게도 그늘은 있었어요.

하지만 끝끝내 알 수 없었어요.

내가 알아야 할 아픔들까지도 혼자 감내하고 짊어지고 사라졌거든요.

그러다 다시 만났다고 생각한 그는 주위의 모든 걸 가감 없이 베어버리는 사람이었어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냉정했어요.

그를 알아갈 수 없었지만 여전히 그는 날 구해줬어요.

그리고 어떠한 사정으로 변했든 내가 사랑했던 그였다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옆에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를 뒤로 한 채 다른 세계로 가야 했어요.

바로 여기.

지금의 세계.

유연이 아닌 ‘퀸’으로서.

죽음을 넘어서.

평행세계였던 이곳은 내가 있었던 세계와 같았지만 달랐어요.

아무도 날 몰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어요.

여전히 난 무력했고.

그저 이름만 ‘퀸’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러다 다시 ‘그’를 만났어요.

나를 전혀 모르는 ‘그’였어요.

하지만 다르지 않았어.

내가 알던 그가 여전히 남아있었어요.

물론 성격은 엉망이었지만.

그는 나를 위협했고, 질책했지만 결국에는 날 구해줬어요.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그런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퀸’으로 각성해서 나의 일을 마치는 것뿐이었어요.

이 결정이 맞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게 되었어요.

나대신 다른 이들이 무참히 죽어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더 이상 내가 존재했던.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에서의 붕괴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어요.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또 다시 그 선택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난 응하지 못할 거예요. 절대.”

“왜.”

“내가 사랑했던 ‘그’를 영원히 지워야 하니까요.

또 다른 선택지는 퀸으로 각성 후 블랙스완에 속한 모든 이들이 처음부터 어떤 세계든

존재하지 않도록 그저 자연의 자정작용에 모든 걸 맡기는 거였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는 지켜보는 자로 남는 선택지였어요.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었어요.

나만이 기억하고 시간 속으로 사라지면 되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내가 생각해온 세계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해버리면 결국 내가 거부하며 발버둥 치며 싸웠던 또 다른 ‘퀸’이 되어 버리고 마니까.

날 지켜준 사람들을 저버리는 거니까.

날 지켜준 ‘그’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거니까.

더 이상 ‘그’의 웃음을 볼 기회조차 없어지게 되는 거니까.”

 

헬리오스는 유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소중한 그를 위해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의 삶에 조금이나마 안식이 오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젠가 그가 돌아온다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그렇게 난 내가 한 모든 것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어요.

사랑하는 이의 웃음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소원을 매일 매일 삼켜 가면서.”

 

“납득했어.”

 

“내가 너를 만나러 왔던 이유를 납득했어.

그리고 너의 결정을 납득했어.

너의 하찮은 소원도 납득했어.

 

하지만 너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납득하지 않았어.

 

내 용건은 끝났어.”

 

헬리오스는 말을 마친 후 미련 없이 뒤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유연은 방금 들은 말을 헤아릴 수 없을 새에 뒤돌아 버리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어디가요?”

“용건은 끝났으니 가는 것뿐이야. 그리고 약속한 일주일은 오늘로 끝이야.”

“그렇게 대답하고 가버리면 어떡해요?”

“지금의 세계의 ‘그’는 이대로 충분해?”

“네?”

“네가 정말 사랑했던 그는 지금의 그와 달라. 그래도 넌 여전히 ‘그’를 사랑 할 수 있어?”

 

유연은 헬리오스의 질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언제나 여러 번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였으니까.

 

“그럼요. 난 그를 믿어요. 믿을 거예요.

나에겐 이제 충분한 시간들이 있으니까.

이젠 내 차례니까.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거예요.

지킬 거예요.”

“그럼, 기다려.”

 

유연의 눈은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네!”

 

유연의 웃음을 본 헬리오스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설프게 손을 올려 머리를 스친 후 떠나갔다.

 

몇 년이 지난 후의 여름날 해변가는 매년 그랬듯이 햇빛에 반사된 그림자로 별들의 길이 열린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연은 다리를 끌어 모으고 앉아 하염없이 그 광경을 쳐다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서쪽 하늘 에서도.

동쪽 하늘 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예쁘다. 반짝반짝.”

 

“아무리 봐도 별은 안 보이는데,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유연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로 뒤돌아보았다.

 

헬리오스였다.

떠났던 그날과는 달리 조금은 짧아진 머리와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덜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헬리오스...맞죠?”

“그럼, 누구로 보이는데?”

“아뇨. 너무 놀라서요. 돌아올 줄은 몰랐으니까.”

“기다리라고 했잖아.”

 

유연은 계속 헬리오스를 쳐다만 보았다.

정말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헬리오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 숨 쉬었다.

 

“나 안 반가워?”

 

“아뇨! 반가운데! 엄청 반가운데! 그런데...”

 

“납득했어.

앞으로의 내 삶.

그리고 너의 소원을 납득했어.”

 

“네?”

 

“너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가 내놓은 답이야.”

 

“그러니까...헬리오스씨”

 

“너와 함께 할 거야.

네가 말했잖아.

우린 공범이라고.

네가 바라는 내 행복이 궁금해졌어.

그 길은 네가 안내해 줄 거라고 믿어볼게.”

 

유연은 눈물이 터져 나올 것 만 같았다.

그래서 웃어버렸다.

 

“하하. 근데 나 사실 길치에요. 헬리오스.”

헬리오스는 유연을 지나 해변으로 걸어갔다.

유연은 헬리오스를 뒤따라 걸었다.

 

“알아. 너 길치 인거.

그리고 너 노래 진짜 못해.”

 

헬리오스는 유연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너무해!”

 

유연은 그런 헬리오스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랑하는 이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었다.

여름날 바닷속에 떠다니는 빛의 은하수가 가득 했던 그 날.

나는 내 소원의 별을 다시 만났다.

 

<소원> 마침.

L&P

Black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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